11월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주 목요일. 이 날만큼은 대중교통도, 경찰도, 심지어 공군과 항공기도 오직 수험생을 위해 움직입니다. 매년 그랬듯이 올해 11월에도 한국의 연례 행사인 수능이 예정되어
있는데요. 12년간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단 하루에 쏟아내야 하는 중요한 날인 만큼 수능의 난이도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수능의 난이도가 비교적 어려우면 사람들은 이를 ‘불수능’이라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역대 최악의 불수능은 언제였을까요? 그리고 당시 수능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심심풀이로 한 번 풀어보는 시간도 가져보겠습니다!
<작년 시행된 2018학년도 수능 모습. 작년 수능은 지진으로 인해 ‘사상 초유의 수능 연기’라는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
‘불수능’의 기준은?
단순히 심리적으로 ‘어려웠다’라는 응시생의 생각으로는 불수능을 가려내기엔 객관성이 떨어져 무리가 있죠. 따라서 불수능의 객관적인 기준을 정해봤습니다. 수능 점수는 500점 만점의 원점수와 영역별 문제 난이도를 반영하기 위해 응시생들의 평균과 표준편차를 이용해 계산한 표준점수, 그리고 상위 4%인 1등급의 커트라인으로 성적이 가려지는데요. 이 세 가지가 바로 응시생들의 성적과 등급을 판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수능을 응시한 분들이라면 물수능보다 차라리 불수능이 낫다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그럼 불수능의 기준은 어떻게 될까요? 우선 매해 수능 만점자의
수가 적을수록 수능의 난이도가 높습니다. 또한 표준점수가 비교적 높을수록, 그리고 1등급의 커트라인 점수가 낮을수록 수능의 난이도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대 수능 중 만점자도 적고 표준점수도 높으며 1등급 커트라인도 낮았던 사상 최악의 불수능은 언제였을까요?
3위 : 수리영역, 극악의 난이도로 출제되다! 09학년도 수능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2008년 11월 13일에
진행된 09학년도 수능은 언어영역과 수리영역에 취약한 응시생에겐 지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만점자를 기준으로 언어영역의 표준점수는 140점으로 역대 수능 중
두 번째로 높았습니다. 언어영역에서는 비문학 지문 중 이른바 ‘공룡발자국
지문’과 ‘동영상 압축 지문’에 응시생들의 분통이 터졌는데요. 가뜩이나 부족한 언어영역 응시 시간에
엄청난 난이도의 지문으로 인해 응시생들은 한 지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2009학년도 수능 언어영역 비문학 ‘동영상
압축’ 문제. 심심풀이로 한 번 풀어보자.>
09학년도 수능의 진짜 난이도는 바로 수리영역에 있었습니다. 수리영역의
표준점수는 (가)형 154점, (나)형 158점으로
이 점수는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나)영역의 원점수 1등급 컷은 78점으로
수능 역사상 최초로 (나)형 1등급 컷이 80점 아래로 내려간 사례라고 합니다.
<참고로 이 문제를 출제한 교수는 대학교 심화과정으로 배울 문제를 고등학생에게 출제했다는 사유로 3년간 출제위원으로 뽑힐 수 없었다.>
탐구영역에서는 응시생들에게 혼돈을 느끼게 하는 문제가 출제되었는데요.
사회탐구영역에서 아직도 전설로 내려오고 있는 사회문화 과목의 이른바 ‘4% 문제’입니다. 객관식임에도 불구하고 정답률이 무려 4%밖에 되지 않아 사회문화 응시생들을 고난에 빠지게 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문제가 시험지의 후반부가 아닌 3번 문제로
출제되었다는 것이죠.
2위 : 1교시부터 불바다가 된 응시장, 11학년도 수능
앞서 언급한 09학년도 수능의 언어영역은 만점자 표준점수가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높은 표준점수의 언어영역은 언제 출제되었을까요? 지난 2010년 11월 18일, 2011학년도 수능에서 이 기록이 갱신되었습니다. 이 날 출제된 문제는 모든 영역을 통틀어 전방위로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했는데요. 전 영역 만점자 0명, 자연계 기준 언수외 만점자 0명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빈 칸이 포함된 문장 하나의 길이가 무려 5줄을 차지한다. 응시생들에게 왜 이런 시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살벌한 난이도를 조금 더 리얼하게 체감할 수 있는데요. 지난 2009학년도 수능에서 수리영역 (나)형의 1등급 컷이 처음으로
80점 선이 붕괴한 데에 이어 (가)형 역시 1등급 컷을 79점으로
기록하며 최초로 80점 선이 붕괴되었습니다. 특히 수리영역
(가)형의 24번
문제는 정답률 5%를 기록하며 아직도 극강의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죠.
<최초로 수리 (가)형의
1등급 컷을 80점 밑으로 끌어내린 결정적인 문제.>
응시생의 멘탈을 붕괴시켰던 것은 비단 문제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응시장에 보급된 샤프의 품질이 좋지 않아 응시장에는 샤프심 부러지는 소리로 가득했다고 하는데요. 이듬해
감사원이 조사한 결과 수능 샤프 입찰 과정에서 평가원 직원의 비리가 밝혀졌습니다. 국산 샤프만을 입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로비를 받고 저품질의 중국산 샤프 입찰을 허용했다고 합니다.
1위 : 불수능 계의 영원한 전설, 97학년도 수능
지하철 8호선이 처음 개통되던 1996년, 수능에서는 앞으로도 절대 깨지지 않을, 영원불멸의 불수능이 출제되었습니다. 본고사 폐지 후 처음으로 400점 만점 수능이 시행된 해인데요. 수능 전 평가원이 직접적으로
“어떤 형태의 과외로도 시험에 도움되지 못하도록 어렵게 내겠다.”고
밝혔을 때 당시 응시생들은 미리 직감했어야 할 정도입니다.
<당시 수능 관련하여 실제로 발간된 조선일보의 기사. 100점
만점인 시험을 80점만 받아도 서울대를 갈 수 있을 정도로 불수능이었다.>
97학년도 수능을 짧게 요약하면 “300점 대면 SKY, 270점 대라도 성균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0점 만점 기준 전국 1등이 373점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불수능을 자랑했는데요. 당시 응시생들은 인문계열 기준으로 총점 200점을 받아도 상위 15%, 현재로 치면 3등급 선이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현재 시행되는 수능에서 4등급, 5등급을 받아도 in서울, 그것도 꽤나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죠.
<’정답률 0.08%’라는 말에 이 수능을 응시했던, 현재 41세이신 분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전설의 수능답게 97학년도 수능에서 정말 전설적인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수리탐구영역 29번 문제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난이도의 극한을 맛보고 싶은 고등학생들이 도전한다고 하는데요. 이 문제의 정답률이 무려 0.08%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전국의 응시생이 10000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 29번 문제를 맞추는 응시생은 전국에 단 8명밖에 되지 않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난이도의 문제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