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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뉴 노멀이다 : 실리콘밸리

2018.09.06


생태계(Ecosystem).

최근 경제 산업 분야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일 것이다. 생태계를 장악해야 비즈니스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은 21세기 비즈니스의 금언처럼 쓰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신생기업) 등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말을 쉽게 한다.

하지만 생태계가 되겠다,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선언만큼 야심차고 의욕적인 말은 없을 것이다. 생태계는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 등이 존재하고 큰 동물에서부터 작은 잡초까지 다양한 구성원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는 흔히 '정글' 또는 '열대 우림(Rainforest)'으로도 비유된다. 열대우림은 비가 많이 내리고 고온다습한 아마존 같은 지역으로 수많은 동식물이 그 다양성 속에서 울창한 생태계를 이루며 번성한다.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 다양한 규모의 기업과 벤처 생태계(자본), 우수한 인력(스탠퍼드대 및 UC버클리)이 조화를 이루고 공존하고 있는 실리콘 밸리는 그야말로 생태계라 할 만하다. 창의성과 비즈니스 감각, 투자자본 등 여러 요소가 섞여 번창한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사람, 조직)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약육강식의 세계 실리콘 밸리


열대 우림의 가장 큰 특징은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점이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트위터, 우버 등 ‘10%도 안되는 신생 기업이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배경에는 야후, 마이스페이스닷컴, 포스퀘어 등 ‘90% 기업이 죽은 '약육강식의 세계'가 있었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전기차 '모델S' '모델3'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나 테슬라도 파산 직전에 놓여 있다가 극적으로 살아났다. 애플이 미국기업 최초로 1조달러 시가총액을 돌파한 '영광'은 조명을 받지만, 주가 1달러를 기록하며 사실상 "망한 기업" 취급을 당했던 사실은 잊히곤 한다.

구글도 마찬가지다. 세계 시장을 장악한 검색엔진이자 21세기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꼽히지만 가장 먼저 나온 검색엔진은 아니었다. 구글 이전에 알타비스타, 라이코스, 애스크닷컴 등의 검색 엔진이 존재했으며 구글은 23번째로 세상에 나온 검색엔진이었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설립자(founder)이지만 페이스북을 창조한 사람은 아니다. 윙클보스 형제는 2008년 마크 저커버그가 자신들이 만든 사이트 커넥트 유(Connect U)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며 2008년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승소해 페이스북 주식 일부를 보상금으로 받았다.

이들 업체에서 끊임 없이 변화하지 않은 곳은 도태된다는 점이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핵심가치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야후는 신생 검색업체 구글을 인수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구글은 세계 최대 검색엔진이 된 반면 야후는 존재감을 잃고 AOL 및 버라이즌에 매각됐다. 구글은 지금 '검색엔진' 업체라고 볼 수 없다. 자율주행차를 만들고(웨이모), TV 서비스를 하며(유튜브) 스마트폰을 제조한다(픽셀폰). 구글이 스스로 변신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검색엔진'업체로서의 구글도 잊혔을 것이다



<차고 창업 시절의 구글. 검색엔진 회사 구글은 끊임없는 변신을 통해 오늘날 세계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미국 전체기업의 기업가치 4분의 1이 실리콘 밸리에 


인터넷과 디지털은 글로벌 경제과 산업의 핵심 키워드다. 2007년 애플 아이폰 등장 이후 10년간 쇼핑, 금융, 건강, 주거, 교통 등 일상 활동을 스마트폰으로 해결하게 되면서, 디지털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해졌다. 이 같은 현상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 우버 등 실리콘밸리 기업의 무한 성장을 가져왔다. 그 결과 디지털이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실제 구글,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넷플릭스 등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미국 상장 기업(MSCI) 25%를 차지하고 있다. 시가총액은 각사 발행 주식에 주가를 곱한 것으로 회사의 미래 기업 가치를 반영한다.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이 미국 전체 기업 가치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점이 크다.

이들은 미 전체 기업의 연구개발(R&D)과 자본 지출 증가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2007년 매출 대비13% R&D에 썼으나 10년 후인 2017년에는 이 비중이 18%로 늘었다




실리콘밸리의 마르지 않는 진짜 경쟁력, 역동성

실리콘밸리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바로 역동성에 있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가상 증강현실 등 시대가 지날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기술적 돌파구와 이를 활용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전망, 창업자들의 비전, 이를 믿는 벤처캐피털의 모험 자본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전 세계에서 인재가 계속 몰리고 있다.

과거에는 뉴욕 월스트리트이나 워싱턴DC 정부 단지에서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지금 10~30대 밀레니얼 및 Z세대는 '실리콘밸리 기업'에 입사하거나 창업하는 것을 꿈꾼다. 인재의 드레스 코드는 '넥타이'에서 '후디'로 바뀌고 있다.

게다가 실리콘밸리에는 전 세계에서 온 인재들이 생태계 일원이 되도록 유도하는 분위기가 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같은 이미 전설이 된 인물이 있었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레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자 등 살아있는 전설이 존재하고 있는 이곳에선, 누구나 기꺼이 생태계의 '일원'이 되려고 한다.

실리콘밸리에는 철저한 능력주의(meritocracy)가 있다. 이곳 사람들은 기술이 있고 재능이 있으면 반드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다. 실패에 관대한 편이라, 실패하더라도 기회가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큰일을 시도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편이다.

신기술이나 새 비즈니스가 아닌 경우에도 과감하게 시도하고 성공한 경우가 있다. 최근 넷플릭스의 구독 모델을 접목한 실내 자전거 '펠로톤(Peloton)'과 전자담배 회사 '(Juul)'는 완전히 새로운 신기술은 아니다. 오히려 안될 것이라는 통념이 지배하는 기존 비즈니스를 응용하고 혁신한 것이다.  




2000달러짜리 인터넷 연결 헬스 자전거를 판매하는 펠로톤은 최근 55000만달러( 6146억원)의 자금을 투자 받아 화제가 됐다. 사용하지 않는 '실내 자전거' '운동 수업 동영상'을 결합한 제품이 주목을 받은 것이다. 중년이 되면 피트니스센터에 가고 싶어도 젊은 사람, 몸이 좋은 사람들이 간다는 통념 때문에 잘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존 폴리 CEO는 집에서 피트니스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운동하는 펠로톤을 개발했다.

실내 자전거를 구매하고 월정액을 내면 실내 자전거 화면으로 4000여 개 수업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실내 자전거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기존 피트니스센터 멤버십보다 효율적이고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어 100만명의 가입자를 모았고 연매출 17000만달러( 1903억원)를 넘었다. 펠로톤은 피트니스 테크, 구독 비즈니스 모델, 하드웨어(실내 자전거), 오프라인 진출(매장) 등 실리콘밸리에서 주목 받는 키워드를 가진 회사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가 있는 전자담배 회사 줄은 12억달러( 13402억원)의 투자 유치를 해 화제가 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에서 만든 전자담배는 겉모습이 USB 플래시 드라이브처럼 생겼다. 겉모습만으로는 담배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소금 용액에 니코틴을 넣어 사용하는데 연기가 거의 나지 않고 과일, 사탕 향기가 나기 때문에 주위에서도 담배를 피우는지 잘 모른다. 니코틴 농도는 5%로 시중에서 유통되는 다른 전자담배보다 높다.

2015년 사업을 시작한 줄은 지난해에만 매출액이 700% 올라 2460만달러( 2425억원)를 기록했다. 올해는 이보다 더 큰 매출 성장을 보여 미국 전자담배 시장의 68%를 점유하고 스타트업 가치 순위도 10위권 안에 드는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역동성의 원천 : 투자


실리콘밸리는 좋은 기술과 사람만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혁신 수도'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보험자본'은 오늘날 실리콘밸리를 실리콘밸리답게 만드는 피와 같은 존재다. 이 같은 벤처 캐피털의 지형도 2018년 들어 크게 변하고 있다.

2018년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 산업의 가장 큰 화두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가 꼽힌다. 손정의 회장의 비전 펀드는 벤처캐피털 뿐만 아니라 글로벌 산업 지형의 변화를 대변한다.

지난해 5 1000억달러( 108조원) 규모로 조성된 비전 펀드는 우버, ARM홀딩스, 엔비디아, 위워크, 플립카트 등 세계 각국에서 모빌리티, 사물인터넷(IoT), 이커머스 등을 이끄는 스타트업에 대규모로 투자하면서 시장을 뒤흔들어 놨다.

스타트업은 거액을 투자 받아 인재를 흡수, 시장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상장(IPO)으로 가는 빠른 길을 만들기 때문에 소프트뱅크도 투자금액을 금세 회수하면서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




손 회장의 투자가 주목 받는 건 "기술은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투자금액)이 곧 기술"이라는 명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벤처캐피털 등 자본 시장은 소규모 투자를 통해 지분을 획득하고 IPO나 인수·합병(M&A)으로 자금 회수를 하는 것이 목표였다. 특히 자본과 기술, 비즈니스는 별개로 인식돼 왔다.

손 회장은 자본과 기술, 비즈니스를 하나로 만들고 있다. '투자 경영'을 통해 산업을 만들고 기술을 인수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 비전 펀드는 우버에 90억달러를 투자해 최대주주로 등극했는데, 중국 '디디 추싱', 싱가포르 '그랩', 인도 '올라', 브라질 '99' 등 글로벌 차량 호출 서비스 업체에도 투자하면서 차량공유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다.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는 차량공유 기술을 개발하지 않았고 회사를 직접 만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투자'를 통해 세계 최대 차량공유 그룹이 됐다.

비전 펀드와 같은 '메가펀드' 트렌드는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 중국 국유기업 자오상쥐그룹이 150억달러( 16조원) 규모의 '중국 신시대 기술 펀드'를 조성했으며 미국 실리콘밸리 최대 벤처투자사 세콰이어캐피털도 80억달러 규모 펀드를 목표로 60억달러( 67000억원) 규모 자금을 조달했다.

올해 들어 가장 중요한 투자 동향 중 하나는 '엔젤·시드 투자', 즉 초기 투자 자본이 늘었다는 점이다. 첫 펀딩을 하는 회사들의 금액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의 수도 늘었다. 지난 2분기 115억달러 상당의 벤처캐피털 자금이 초기 단계 기업에 투자됐다.

인텔캐피털, 퀄컴벤처스 등 대기업들의 사내 벤처캐피털(CVC) 활동도 활발했다. 올해 상반기 CVC 투자액은 278억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4년 한 해 동안 CVC에서 투자한 액수를 넘어서는 수치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던 2015 372억달러에도 근접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CVC 투자액과 투자 건수가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혁신의 숨겨진 비밀은노동 환경


구글(알파벳),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등 실리콘밸리 혁신 기업들은 세계 최고 생산성을 자랑한다. 직원은 5400(넷플릭스)~123000(애플) 수준에 불과하지만 글로벌 증시에서 시가총액 상위권을 독차지하고 있으며 매분기  매출과 이익 모두 두 자릿수 성장하는 등 분기마다 최고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 생산성이 월등히 높은 이유는 복지 혜택이 많다거나 '노동시간'이 적어서가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 인재에게 고액 연봉과 함께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주는 기업 문화와 제도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연봉'은 높은 생산성의 기본 요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공개한 미국 주요 대기업의 중간연봉 패키지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 직원의 지난해 중간연봉은 24만달러(26000만원)에 달하고 구글 직원은 197000달러(21000만원)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간연봉은 전체 직원을 연봉순으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해당하는 사람이 받는 연봉을 뜻하는데 S&P500지수에 속한 379개 기업 가운데 페이스북의 연봉 순위는 2, 구글은 4위였다. 실리콘밸리 기업 전체의 평균 연봉도 12만달러(13024만원)에 달한다. 이는 미국 전체 기업의 평균 연봉(51970달러)에 비해서도 크게 높다. 높은 성과에 따른 주식·스톡옵션도 상당하다.

하지만 고연봉에 따라 임직원에게 부여되는 '책임'도 상당히 무겁다. 실리콘밸리 기업 임직원들은 회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프로젝트에 매달리는 것이 보통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직원과 체결하는 노동계약서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업무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지키는 회사와 직원은 많지 않다. 프로젝트 성패와 시간에 따라 주당 70시간 이상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노조가 없고 해고가 자유로운 점도 실리콘밸리 생산성의 특징으로 꼽힌다. 넷플릭스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직원에게 최고 연봉을 줄 뿐만 아니라 최소 6주 휴가를 보장하는 등 자유로운 기업 문화로 유명하지만 이와 별도로 프로젝트 상황에 따라 가차 없이 해고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실리콘밸리는 기술 변화가 빠르다 보니 500~1000명 수준의 사업부 전체를 해고하는 사례도 많다. 2013년부터 최근까지 클라우드컴퓨팅, 인공지능이 주류 기술로 정착함에 따라 IBM, HP, 오라클, 시스코, 인텔, 야후 등 전통 강자들은 임직원 대량 해고를 단행했다. 해고를 당하더라도 사회안전망이 없어 이에 따른 결과는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해고가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이 없다는 점도 치열한 경쟁을 유발하는 원인이다. 이 같은 노동 환경 때문에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은 포천지가 최근 발표한 2018 '일하기 좋은 직장' 순위 100위권에조차 올라가지 못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유연근무가 가능한 것은 미국 노동법상 '시간 외 수당 면제직원(exempt employees)' 규정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법은 주별로 다른데, 캘리포니아에서는 근로자를 '시간 외 수당 근로자' '시간 외 수당 면제직원'으로 구분하고 있다. 계약직과 단순 업무 종사자들은 시간 외 수당 근로자로 구분된다. 이들의 근무시간은 주 40시간으로, 이를 초과해 근무하면 기존 임금의 1.5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초과수당으로 받는다. 초과근로를 포함한 노동시간은 주 72시간을 넘을 수 없다.

반면 실리콘밸리 임원과 전문직, 세일즈 직군은 시간 외 수당 면제직원으로 노동시간에 대한 제약이 없다. 노동시간과 무관하게 회사와 직원 간 연봉계약을 맺는다. 실리콘밸리 직원 상당수는 전문직에 해당돼 근무시간과 관계없이 연봉과 성과급(주식·스톡옵션)을 받는다.

 

☞ 손재권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은 이번 달로 연재를 마칩니다. 다음 달부터는 김현예 중앙일보 기자가 <괴짜기업-슈퍼 크레이지를 찾아서(가제)>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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